2018-10-25 핀란드 교환일지

2018. 10. 26. 03:09교환학생 라이프/교환일지

2018년 10월 25일(핀란드 현지 시각)


이제 귀국도 두 달 조금 넘게 남았는데, 그 전까지 일기 형식으로 일지를 남겨보려 한다.

밤 10시. 달빛을 잉크 삼아 쓰는 글이라 다소 두서가 없을 수 있다.


[Language Cafe meeting]

어제 수업 3개가 몰려있던 바람에

오늘은 수업이 International Marketing 하나 밖에 없었다. 이 마저도 외부강사 초빙강연이기에 부담없이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수업은 노잼이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한국이나 핀란드나 과제 많고, 팀플 많고, 수업이 재미 없는 건 마찬가지이다. 괜히 두 나라가 교육열 최상위권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튼 수업을 마치고 집에서 쉬다가 오후 5시에 ESN KISA(유럽학생연합 쿠오피오 지부)에서 주최한 <Language Cafe>행사에 다녀왔다.

이는 다국적 학생들이 모여 서로 관심이 있는 상대국 언어를 멘토와 멘티로 나뉘어 배울 수 있도록한 행사였다.


행사가 옆 학교인 UEF(University of Eastern Finland) 건물에서 열렸는데, 집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이탈리아인 친구 쥬셒(스펠링은 모른다)와 얘기를 하면서 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 친구는 정말 이탈리안 박찬호이다. 말이 너무 많다. 한 번 시작하면 멈추는 법을 모른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친구들이 쥬셒과 이야기 하는 것을 꺼리는 것을 자주 느끼는 편이다. 나도 평소에는 인사만 하고 끝내지만, 버스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자연스레 대화를 하게 되었다.


쥬셒 : 헤이 제이크!

나 : 하이! 너도 지금 Language Cafe 가니?

쥬셒 : 예쓰, 나도 가! 너도 가니?

나 : 나도 가ㅎㅎ 그럼 너에게 이탈리아어를 배울 수 있겠구나!

쥬셒 : 그래, 하지만 이탈리아어는 정말 복잡해

나 : 인사말 같은 간단한 것만 알려줘도 돼

쥬셒 : 보카 단어장 두께가 영어의 두 배가 넘고, 강세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가지고, 어쩌구 저쩌구

(혼자서 10분 동안 얘기했다)

나 : ㅇㅇ..

쥬셒 :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어가 복잡해. 특히 문법이 엄청 어려워 어쩌구 저쩌구...

나 : ㅇㅇ..

쥬셒 : (또 다시) 이런 이유로 정말 복합하다고 생각해

나 : 와! 정말 배우기 어렵겠다~

쥬셒 : 맞아. 또 이런이런 것 때문에 정말 복잡해

나 : ....(창문을 슬쩍 보고) 이제 우리 버스 내려야 해


목적지에 다다라서야 대화를 겨우 끝냈다.

그가 "That's the reason why~" 만 3번은 넘게 말 한 것 같다.

쥬셒이 버스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어서 말을 걸기 위해선 뒤로 등을 돌려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는데...

그는 진정한 TMT이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말 많은 친구를 상대해본 적이 없었다.


각설하고 랭귀지 카페가 열리는 강의실에 들어갔더니 모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일본인 친구 쇼타로와 처음 보는 핀란드 여자 그리고.. 쥬셒이랑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물론 행사 내용은 재밌었다. 20명 남짓한 친구들이 참여했는데 국적이 스페인, 독일, 체코, 일본, 중국, 태국, 폴란드 등으로 다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면서 서로 간단히 인사를 하며 상대방의 인사법을 배웠다. 나는 일단 처음에 이집트 친구에게 인삿말을 배웠는데 Hello가 "말하밥(?)" How are you가 "키팩(?)".. 정말 어렵다. 정확하지도 않은 것 같다. 두 번째로는 핀란드 친구를 만났다. 사실 Survival Finnish 수업을 듣고 있어서 간단한 인삿말 정도는 알고 있었다.


Moi! 모이! = Hi!

Mitä Kuuluu 미따 꾸울루우 = How are you?


평소에도 마트 등에 가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덕분에 핀란드 친구가 조금 놀랐던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약간의 일본어를 배웠다. 쇼타로가 일본어로 "How are you?"가 "오겡끼데스까?" 라고 알려줬는데, 알고보니 나도 알고있었던 문장이였다. 그래서 "나 이거 알고 있음ㅋㅋㅋ"이라고 말하며 러브액츄얼리 시늉을 했다.

일본어에서 배운 한 가지 꿀팁은 "오겡끼데스까?'는 공손한(formal) 표현이고 "겡끼데쓰까?"로 줄여서 쓸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마저도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겡끼?"라고 딱 두 글자만 사용한다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핀란드어로 고맙다는 뜻의 "Kiitos(끼이또스)"도 "Kiiti(빠르게 끼이띠)"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큰 차이가 없긴 하다).


그 반대로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 인사법을 알려주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냈어?"를 발음하기가 외국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안녕"이라고 줄여서 사용한다고 말하니 그제서야 쉬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잘 지냈어?"는 정말 가르쳐주기 힘들었다ㅎㅎㅎ... "좔 쥐냍써?" "촬 지냍쒀?"라고 어렵게 따라하는 친구들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 많이 놀란 것은 많은 친구들이 "안녕하세요"를 알고 있던 것이다.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봤더니, K-drama, K-pop 등에서 배웠다고 한다.(펄~럭)

특히, 중동이나 북아프리카(MENA) 사람들이 한국어를 많이 좋아한다. 가끔 클럽이나 버스에서 종종 히잡을 쓴 여학생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서투른 발음으로 먼저 "안녕하세요"를 말하기도 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쥬셒의 가방 사건이다.

쥬셒이 욱일기 무늬가 있는 책가방이 있는데(나도 몇 번 본 것 같다.)(쥬세프가 오타쿠 기질이 있어서 일본어나 일본 문화를 많이 좋아한다.)

이를 본 다른 한국인 여자가 얼마 전에 이를 나무라며 가방 사진을 찍어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다는 것이다. 쥬셒의 말이 너무 많고 빨라서 처음에는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정확히 몰랐는데, 내가 사진을 보여줄 수 있냐고 하니 구글 검색을 통해 사진을 보여줬는데.. 확실히 욱일기였다. 하필 바로 옆에 일본인 쇼타로가 앉아 있었는데 서로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땀을 뻘뻘 흘렸다. 쇼타로가 일본 자위대의 깃발이라고 먼저 설명하고 내가 많은 사람들이 이 문양을 나치 문양과 비슷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는데, 다행히 쇼타로도 인정해 주었다. 정말 민감한 문제였다. 꽤나 무거운 주제이기에 성급히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중요한 것은 쥬셒은 욱일기의 의미를 몰랐고, 단지 일본 문화가 좋아서 가방을 일본 제품을 취급하는 곳에서 구매한 것 같다. 조금은 억울해하는 표정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매주 목요일 마다 시내 펍&클럽에서 맥주를 싸게 판매한다. 원래 펍에서 맥주를 한 잔을 마시려면 보통 5유로 이상을 내야한다.(원화 6,500원 가량)

하지만 목요일이나 특별한 파티가 있을 경우 3유로 ~ 4유로 정도에 맥주를 마실 수 있다(한국 가격이랑 비슷). 매주 목요일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물론 핀란드라고 맥주가 다 비싼건 아니다. 핀란드 대표 맥주인 KOFF 같은 경우 슈퍼마켓에서 한 캔에 0.8~0.9 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캔 혹은 병 음료는 캔과 병값 0.1유로 정도가 계산 시 붙는다. 이는 마켓에 있는 빈 병 반납머신에 넣으면 알아서 잔돈으로 환급받을 수 있다. 이는 핀란드 사람들이 캔이나 병을 그냥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나도 지금 까지 마신 맥주캔이며 에너지드링크캔이며 방 구석에 모아두고 있다. 여러 종류의 에너지드링크 용기를 모으고 있는데 수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이 모두 학생이기에 돈을 아끼기 위해 펍이나 클럽에 가기 전에 항상 친구네 숙소에서 프리드링킹을 한다. 나는 보통 맥주 두 캔을 마시고 클럽으로 출발한다. 맥주 두 캔의 알딸딸한 기분이 버스타고 가는 20분 동안의 공허함을 제거해준다. 이는 또한 적당한 포만감을 주어 펍에 가서 맥주를 덜 시키게 도와준다. 펍이 워낙 크고 시끄럽기 때문에 술을 안 시키고 있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아무튼 프리드링킹을 하러가기 전에 방에서 존버하고 있었는데, 독일인 룸메 말트가 옷에 단추가 떨어졌다며 실과 바늘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가 단추를 꿰메는 동안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뜨거운 차를 홀짝홀짝 마시자 말트는 어떻게 뜨거운 차를 마실 수 있나면서 자기는 무조건 식힌 다음에 먹는다고 말했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차를 마시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뜨거움을 이용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는 원래 이렇게 마신다고 했다. 말트가 중국 상하이에서 3~4개월 정도 공부를 하다가 바로 핀란드로 온 상태라 그는 동양 문화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동양사람들은 뜨거운 수프(국) 많이 먹으니 그런것 같다" 라는 꽤 논리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한 시간 정도의 수다가 끝난 후 네덜란드 절친인 마크와 아리의 집으로 가서 오늘의 DJ 카탈루냐에서 온 로제의 음악과 함께 친구들과 프리드링킹을 했다.


밤 11시가 되어 버스를 타고 20분이 지나 펍에 도착했다. 오늘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오늘 벨기에 친구 일리사의 생일이여서 많은 친구들이 모여있었다. 12시가 되고 애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여러 나라 버전의 생일축하송이 들려왔다. 네덜란드 버전, 프랑스 버전, 독일 버전..(벨기에는 자국어가 없고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독일어를 사용한다. 그렇다고 모든 벨기에인이 3개 국어를 다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벨기에 친구는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1도 사용할 줄 모르고 오직 네덜란드어만 쓸 줄 안다.) 여러 나라 버전의 생일송이 동시에 끝나고 다 같이 익숙한 영어 버전을 불렀다. 생일 케익 하나 없는 생일이지만 일리사가 정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한국 처럼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 같은 프랜차이즈 업소가 없을 뿐더러, 일반 제빵점은 문을 일찍 닫고 케익의 가격이 비싸서 그런지 여기와서 했던 생일파티에서 케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오기 전에 차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 계속 화장실에 들락날락 했었는데,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던 중 한 핀란드인이 취해서 혀가 꼬인 상태로 핀란드어로 나한테 말을 걸었다. 나는 핀란드어를 모른다고 계속 했고, 마지막에 그 핀란드인이 영어로 "좋은 밤 보내"라고 말해주었다. 아마 그가 말했던 핀란드어도 같은 뜻이 아니었을까?


막차가 2시 15분에 있었기에, 1시 30분 쯤 한국에서 같이 온 형과 함께 피자토리라는 값싼 피자집에 가서 피자를 먹었다. 이 곳은 1.5 유로를 추가하면 갈릭 추가를 해주는데, 이 맛이 진짜 일품이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면 먹은 후에 풍기는 마늘 냄새는 한 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1시 50분 쯤 대다수의 생일 축하를 했던 친구들이 피자를 사러 들어왔다. 다들 취한 상태였는데 그 중 사이먼이라는 독일 친구가 정말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해있었다. 2시 10분 쯤 버스 정류장으로 다 같이 이동했는데, 나는 그를 어깨동무하여 부축해주었다. 하지만 그가 피자를 먹고 손을 안 닦고 나오는 바람에 내 바람막이에 피자와 마늘냄새가 스며들었다. 그냥 일반 세탁하면 안 될 것 같은 재질이라.. 당분간 냄새가 빠질 때 까지 못 입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봤는데 오로라가 흐릿하게 보였던 것 같다. 노르웨이 때 부터 오로라를 많이 봐와서 그런지 이제는 선명한 수준의 오로라가 아닌 이상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익숙함이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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